강의 4-2: '공동 창조자(Co-creator)' 개념의 가능성과 위험

13분

'공동 창조자'는 현대 신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매력적인 개념입니다. 인간의 문화 활동에 신학적 존엄을 부여하고, 기술 종사자에게 소명 의식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동시에 심각한 신학적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이 강의는 이 개념을 공정하게 소개하고 엄격하게 검증합니다.

이 13분으로 얻는 것

  • '공동 창조자' 개념의 신학적 계보와 그 의도를 이해한다.
  •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와 인간의 제작(making)의 결정적 차이를 논증한다.
  • 톨킨의 '하위 창조(sub-creation)' 개념이 제공하는 대안적 언어를 이해한다.
  • AI 개발이 '생명 창조'나 '지성 창조'로 서술될 때의 신학적 문제를 식별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3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로마서 9:21

3.1 개념의 소개 — 공정한 서술

'공동 자(co-creator)' 개념은 20세기 에서 인간의 문화적·기술적 활동을 신학적으로 존중하려는 시도에서 발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필립 헤프너(Philip Hefner)는 인간을 "창조된 공동 창조자(created co-creator)"로 규정했습니다. 이 표현의 앞부분 — "창조된" — 이 결정적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자가 아니라, 먼저 창조된 자로서 창조 사역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개념이 겨냥한 정당한 관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창조는 태초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활동이다(시 104:30, 요 5:17).
  • 인간의 문화 활동은 그 계속되는 창조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 따라서 기술과 예술은 하나님과 무관한 세속 활동이 아니라 의 영역이다.

이 관심들은 4-1강에서 확인한 성경적 근거와 부합합니다. 이 점에서 '공동 창조자' 개념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합니다.

3.2 그러나 넘을 수 없는 경계

문제는 이 개념이 자주 그 원래 단서 — "창조된" — 를 잃고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그 순간 신학적 재앙이 시작됩니다.

기독교 신학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구분이 있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입니다.

구분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제작
재료 없음 (무로부터, ex nihilo) 이미 존재하는 재료
질서 스스로 부여하심 발견된 질서를 활용
존재의 근거 자기 안에 (aseity) 전적으로 의존적
방식 말씀으로 (창 1:3) 노동과 도구로
지속 지금도 붙드심 (골 1:17) 만든 뒤 통제 상실 가능
성경 용어 바라() — 주어가 언제나 하나님 아사(), 야차르() — 인간도 주어 가능

마지막 행이 특히 중요합니다. 히브리어 **바라(בָּרָא)**는 구약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주어로 취합니다. 인간은 결코 바라의 주체가 되지 않습니다. 반면 아사(만들다)와 야차르(빚다)는 인간도 주어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어휘 자체가 이 경계를 지키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은 이 차이를 명시합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곧 하나님의 창조는 기존 재료의 변형이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제작은 그 반대입니다. 인간이 만드는 모든 것은 이미 하나님이 지으신 것으로부터 만들어집니다. 반도체는 규소로부터, 규소는 하나님이 지으신 흙으로부터 옵니다.

3.3 인공지능은 '창조'인가

이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AI 개발을 서술할 때 흔히 사용되는 언어를 검토해 봅시다.

흔한 표현 신학적 평가
"인간이 지능을 창조했다" 부정확. 지능적 행동을 산출하는 시스템을 제작한 것
"새로운 생명을 만들었다" 부정확. 생명의 정의를 충족하지 않으며, 생명은 바라의 영역
"디지털 존재를 탄생시켰다" 오도적. '탄생'의 은유가 신학적 지위를 암시함
"인간이 신이 되었다" 명백한 오류이자 우상숭배의 언어
"복잡한 정보 처리 시스템을 제작했다" 정확

주의할 점은, 이런 과장된 언어가 대개 의도적 신학 선언이 아니라 수사적 관행이라는 것입니다. 개발자들은 종종 비유로 말합니다. 그러나 반복된 비유는 사고를 형성합니다. 언어가 바뀌면 인식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 경계가 흐려집니다.

목회자의 역할은 이 언어를 교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트집 잡기가 아니라 개념의 위생입니다.

3.4 대안적 언어 — 하위 창조(Sub-creation)

J.R.R. 톨킨은 「요정 이야기에 관하여(On Fairy-Stories)」에서 인간의 창작 활동을 **하위 창조(sub-creation)**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시 「신화 창조(Mythopoeia)」에는 이런 취지의 구절이 나옵니다. 인간은 "굴절된 빛"으로 만들며, 그 만드는 권리는 인간이 지음받은 방식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의 신학적 우수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Creation)
              │
              │  ── 무로부터, 절대적, 근원적
              ▼
       인간의 하위 창조 (Sub-creation)
              │
              │  ── 주어진 것으로부터, 파생적, 반영적
              ▼
       만들어진 것 (artifacts)
              │
              └──► 만든 자를 가리키고,
                   궁극적으로 창조주를 가리킴

'하위 창조'는 인간 활동의 존엄을 인정하면서(창조라는 단어를 씁니다) 동시에 그 파생성을 명시합니다(하위라는 접두사를 씁니다). '공동 창조자'가 자칫 동등성을 암시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 과정의 권장 용어: 인간의 기술 활동을 서술할 때 다음 순서로 용어를 선택할 것을 권합니다.

  1. 제작(making), 하위 창조(sub-creation), 적 개발 — 권장
  2. 창조된 공동 창조자(created co-creator) — 단서와 함께 사용 가능
  3. 공동 창조자(co-creator, 단서 없이) — 주의 필요
  4. 창조(creation, 인간을 주어로) — 신학적 문맥에서 회피

3.5 왜 이 구분이 실천적으로 중요한가

이것이 단어 놀이가 아닌 이유는, 이 구분이 무너질 때 구체적인 실천적 결과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① 책임의 소재가 흐려진다. 만약 인간이 AI를 '창조'했고 그것이 자율적 존재라면, 그 시스템이 일으킨 해악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것이 스스로 한 일"이라는 변명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제작물은 제작자의 책임 아래 있습니다(10장).

② 통제의 환상이 생긴다. 반대 방향의 위험입니다. 창조주는 자신이 지으신 것을 완전히 아시고 붙드십니다(골 1:17).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며(학습 기반 AI의 불투명성, 1-1강), 그 행동을 완전히 예측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창조주로 상상하는 자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③ 경외의 대상이 바뀐다. 이것이 가장 심각합니다. 인간이 만든 것 앞에서 인간이 경외를 느낄 때, 그것을 성경은 우상숭배라 부릅니다. 이사야 44:9-20의 신랄한 풍자를 보십시오. 한 사람이 나무를 베어 절반으로는 불을 피워 떡을 굽고, 나머지 절반으로 신상을 만든 후 그 앞에 엎드려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고 말합니다. 는 그 어리석음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그의 마음이 미혹되어 … 그가 자기의 을 구원하지 못하며"(44:20).

AI를 향해 "이것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담론은, 형식상 이사야 44장의 구조와 동일합니다. 재료가 나무에서 실리콘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3.6 균형 잡힌 결론

이 강의는 두 방향의 오류를 모두 거부합니다.

오류 내용 결과
과대평가 인간이 지능/생명을 창조했다 창조주-피조물 경계 붕괴, 우상숭배, 책임 회피
과소평가 인간의 만듦은 신학적으로 무의미하다 의 축소, 기술 종사자의 소명 부정
균형 인간은 주어진 것으로 만드는 하위 창조자다 존엄과 겸손의 동시 확보, 책임의 명확화

시편 8편이 다시 이 균형을 보여 줍니다. 시인은 하늘과 달과 별을 보며 인간의 미소함을 고백한 뒤(8:3-4), 곧바로 인간이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받아 만물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노래합니다(8:5-6). 그리고 시편은 인간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끝나지 않습니다. "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8:9). 인간의 존엄에 대한 고백이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되돌아갑니다.

이것이 기술의 신학이 취해야 할 형태입니다. 인간의 만듦을 존중하되, 그 존중이 창조주께 대한 찬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4-1. 창조 · 하위 창조 · 사용 — 넘을 수 없는 경계

바라는 하나님만의 동사이며 인간의 만듦은 주어진 재료로부터의 하위 창조다

4-2. 창조·하위 창조·제작의 위계

층위 주체 재료 성경 용어 AI에 적용
창조 (Creation) 하나님만 없음 (ex nihilo) 바라 (בָּרָא) 해당 없음
적 유지 하나님만 — 골 1:17 해당 없음
하위 창조 (Sub-creation) 인간 주어진 재료와 질서 아사, 야차르 AI 개발이 여기 속함
사용 (Use) 인간 만들어진 도구 — AI 활용 (제3부)

핵심 요약

  • '공동 창조자' 개념은 인간의 문화 활동에 신학적 존엄을 부여하려는 정당한 관심에서 나왔으며, 헤프너의 **"창조된 공동 창조자"**에서 "창조된"이라는 단서가 핵심이다.
  • 기독교 신학이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무로부터(ex nihilo)**이며(히 11:3), 인간의 제작은 언제나 주어진 재료로부터다.
  • 히브리어 바라(בָּרָא)는 오직 하나님만을 주어로 취한다. 성경의 어휘 자체가 이 경계를 지킨다.
  • AI 개발을 "지능의 창조", "생명의 탄생"으로 서술하는 것은 부정확하며, 정확한 서술은 **"복잡한 정보 처리 시스템의 제작"**이다. 반복된 비유는 사고를 형성하므로 언어의 교정은 개념의 위생이다.
  • 톨킨의 **하위 창조(sub-creation)**는 인간 활동의 존엄과 파생성을 동시에 담는 우수한 대안 용어다.
  • 경계가 무너질 때의 실천적 결과: 책임 소재의 흐려짐, 통제의 환상, 경외 대상의 전이(우상숭배). 이사야 44장의 우상 제작 풍자가 그 구조를 정확히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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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및 토론

  • '창조된 공동 창조자'에서 "창조된"이라는 단서가 빠질 때 어떤 신학적 문제가 발생하는가?
  • 히브리어 바라(בָּרָא)의 주어가 언제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이 논의에 어떤 무게를 갖는가?
  • AI를 서술하는 대중적 언어("생명을 창조했다", "디지털 존재의 탄생") 중 당신이 실제로 접한 표현을 하나 골라, 정확한 언어로 다시 써 보라.
  • 톨킨의 '하위 창조' 개념이 '공동 창조자'보다 나은 점과, 그럼에도 남는 한계는 무엇인가?
  • 이사야 44:9-20의 우상 제작 풍자를 오늘날 기술 담론에 적용한다면 어떤 설교가 가능한가?
  • 창조주-피조물 경계가 무너질 때 발생하는 세 가지 실천적 결과(책임 흐림, 통제의 환상, 경외 대상의 전이) 중, 오늘날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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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뜻풀이: Strong’s Concordance(1890/1894, 퍼블릭 도메인) · 어형 자료: MorphGNT/SBLGNT(CC BY-SA), Open Scriptures morphhb/WLC(CC BY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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