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2-1: Imago Dei의 세 가지 해석 전통
이 강의는 창세기 1:26-28의 본문을 주해하고, 교회사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해 온 세 가지 주요 전통을 소개합니다. 다음 강의(2-2)에서 이 세 전통이 기계 지능 앞에서 어떤 시험을 받는지 검토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각 전통을 그 지지자가 인정할 만한 방식으로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What these 12 minutes give you
- 창세기 1:26-28의 구조와 핵심 히브리어 어휘를 이해한다.
- 실체적·기능적·관계적 해석의 내용, 근거, 대표적 지지자를 설명한다.
- 각 해석의 강점과 약점을 균형 있게 평가한다.
- 세 해석이 배타적 선택지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일 수 있음을 이해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편 8:4-5
3.1 본문의 구조
창세기 1:26-28은 기사 전체에서 형식이 달라지는 유일한 지점입니다. 앞선 모든 창조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는 형식입니다. 그러나 인간 창조에서만 다음 세 가지가 나타납니다.
① 숙의(deliberation)의 형식 —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자". 명령이 아니라 결의의 언어입니다. (이 복수형에 대해서는 적 해석, 천상 회의 해석, 장엄 복수 해석 등이 있으나, 본 강의의 논지에는 어느 해석을 취하든 영향이 없습니다.)
② 과 모양의 언급 — 다른 어떤 피조물에도 사용되지 않은 표현입니다.
③ 통치 의 직접 연결 — 형상 선언 직후 곧바로 "다스리게 하자"가 이어집니다. 형상과 통치가 문법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기능적 해석의 결정적 근거가 됩니다.
도식: 창세기 1장 창조 기사에서 인간 창조의 독특성
[1~25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 있으라" → 되니라
(명령 → 실현)
[26~28절]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 숙의
"우리의 형상을 따라" → 형상
"다스리게 하자" → 위임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 축복
(숙의 → 형상 → 위임 → 축복)
어휘 . 히브리어 첼렘(, 형상)은 구약의 다른 곳에서 주로 조각상이나 우상을 가리킵니다(왕하 11:18, 겔 7:20). 데무트(, 모양)는 유사성·닮음을 뜻합니다. 초기 교부들은 두 단어를 구분하여 첼렘은 후에도 남은 자연적 형상, 데무트는 타락으로 상실된 도덕적 유사성으로 보기도 했습니다(이레니우스의 구분이 대표적). 그러나 현대 주석의 다수 견해는 두 단어가 히브리 시적 병행법에 따라 서로를 보강하는 표현이며 별개의 두 를 가리키지 않는다고 봅니다.
3.2 첫 번째 전통 — 실체적 해석(Substantive View)
주장: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소유한 어떤 속성이다. 곧 , 자유, 도덕적 , 자기의식, 언어 능력 등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구별하는 능력들이다.
계보: 이 해석은 교회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배적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게네스, , 그리고 에 이르러 정교하게 체계화됩니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지성(intellectus)이야말로 하나님을 닮은 지점이라고 보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도 이 틀을 상당 부분 이어받되, 은 형상을 지성과 함께 참된 지식·의·거룩함이라는 도덕적 차원으로 확장했습니다(『기독교강요』 1.15.4).
강점
- 인간과 동물의 실제적 차이를 설명한다.
- 인간의 도덕적 책임의 근거를 제공한다.
- 개인의 존엄을 직접적으로 근거 짓는다.
약점
- 형상을 능력으로 규정하면, 능력에 정도 차이가 있는 이들 사이에 존엄의 차등이 생길 위험이 있다.
- 창세기 본문 자체가 이 속성 목록을 제시하지 않는다. 목록은 본문 밖에서 들어온다.
-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능력을 다른 존재가 능가하면 어떻게 되는가? (2-2강의 주제)
3.3 두 번째 전통 — 기능적 해석(Functional View)
주장: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소유한 속성이 아니라 인간에게 위임된 역할이다. 곧 하나님을 대신하여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왕적 대리자의 직무다.
근거: 창세기 1:26에서 형상 선언과 통치 위임이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문법적 사실이 일차적 근거입니다. 나아가 고대 근동의 배경이 이 해석을 강하게 지지합니다. 당시 왕은 직접 갈 수 없는 변방 영토에 자신의 상(첼렘)을 세워 그곳에서도 자신의 통치가 유효함을 표상했습니다. 창세기는 그 정치적 관행을 뒤집어, 모든 인간이 — 왕만이 아니라 — 하나님의 통치를 표상하는 형상으로 세워졌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고대 세계에서 급진적인 민주화 선언이었습니다.
대표적 지지자: 게르하르트 폰 라트, 클라우스 베스터만 등 20세기 구약학자들이 이 해석을 주류로 확립했습니다.
강점
- 본문에 가장 밀착한 해석이다.
- 인간의 존엄을 능력이 아니라 위임에 둔다.
- 생태적 책임의 적 근거를 제공한다(10장 신학의 토대).
약점
-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들(유아, 중증 장애인)의 형상은 어떻게 되는가?
- 형상을 직무로만 보면 존재론적 존엄이 약화될 수 있다.
3.4 세 번째 전통 — 관계적 해석(Relational View)
주장: 하나님의 형상은 속성도 직무도 아니라, 관계 속에 있는 존재됨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그리고 서로를 향해 열려 있도록 지음받았다.
근거: 창세기 1:27의 후반부 —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가 형상 선언과 병렬로 놓여 있다는 점이 핵심 근거입니다. 인간은 홀로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형상을 이룹니다. 창세기 2:18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가 이를 보강합니다.
대표적 지지자: 가 이 해석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했습니다(『교회교의학』 III/1). 바르트는 하나님 자신이 삼위의 관계 속에 므로, 그 형상인 인간도 관계적 존재라고 논증합니다. 에밀 브루너, 그리고 이후 위르겐 몰트만도 유사한 방향을 취했습니다.
강점
- 능력의 유무와 무관하게 존엄을 근거 짓는다. 관계는 상대편(하나님)이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삼위일체론과 인간론을 통합한다.
- 목회적으로 강력하다. 가장 연약한 성도의 존엄을 흔들림 없이 변호한다.
약점
- 창세기 본문 자체가 이 해석을 명시적으로 진술하지는 않는다. 신학적 종합의 성격이 강하다.
- 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개별 의 실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
3.5 세 전통의 비교
| 구분 | 실체적 해석 | 기능적 해석 | 관계적 해석 |
|---|---|---|---|
| 형상은 무엇인가 | 인간이 가진 속성 | 인간이 하는 직무 | 인간이 놓인 관계 |
| 핵심 근거 | 인간의 이성·도덕성 | 창 1:26의 통치 위임, 고대 근동 배경 | 창 1:27b, 창 2:18, 삼위일체 |
| 대표 인물 | 아퀴나스, 칼뱅 | 폰 라트, 베스터만 | 바르트, 브루너 |
| 존엄의 근거 | 능력의 소유 | 위임의 수여 | 관계의 지속 |
| 능력을 잃은 사람은? | 취약 | 취약 | 강함 |
| 기계가 능력을 능가하면? | 취약 | 강함 (위임은 기계에 주어지지 않음) | 강함 (관계는 기계에 주어지지 않음) |
| 강조점의 위험 | 지성주의 | 직무주의 | 실체성의 희석 |
이 표의 마지막 두 행이 다음 강의의 출발점입니다.
3.6 세 전통은 배타적인가
이 과정은 세 해석을 택일의 선택지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국면으로 봅니다. 성경 본문 자체가 세 요소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6-27 한 문단 안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 존재론적 지위 (실체적 국면)
"다스리게 하자" → 위임된 직무 (기능적 국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관계적 존재됨 (관계적 국면)
↓
셋은 한 실재의 세 측면이다
다만 이 과정은 강조의 순서에 관해 하나의 신학적 입장을 취합니다. 관계와 부르심이 먼저이고, 직무가 그로부터 나오며, 능력은 직무를 수행하는 수단이다. 이 순서를 뒤집어 능력을 첫째 자리에 놓는 순간, 인간론은 기계 지능 앞에서도, 인간의 연약함 앞에서도 무너집니다. 이것이 2-3강의 논지입니다.
시편 8편이 이 순서를 정확히 보여 줍니다. 시인은 먼저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라고 묻습니다. 인간의 존귀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생각하시고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라는 위임이 따라옵니다.
| 본문 | 진술 | 강조되는 국면 |
|---|---|---|
| 창 1:26-27 | 형상대로 지음받고 다스리게 하심 | 실체 + 기능 + 관계 |
| 창 5:1-3 | 아담이 자기 형상 같은 아들을 낳음 | 형상의 세대적 전수 |
| 창 9:6 | 사람을 죽이지 말라, 하나님이 형상대로 지으셨음 | 타락 후에도 형상은 유지됨 |
| 시 8:4-6 | 생각하시고 돌보시며 와 존귀로 관 씌우심 | 관계 → 위임의 순서 |
| 약 3:9 |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저주하지 말라 | 형상의 윤리적 함의 |
| 골 1:15 |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 | 그리스도가 참된 형상 |
| 롬 8:29 |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심 | 형상의 적 회복 |
특히 창세기 9:6에 주목하십시오. 홍수 이후, 곧 인간의 타락과 부패가 극에 달했다고 선언된 직후에도(창 6:5),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로 부르시며 그것을 살인 금지의 근거로 삼으십니다. 형상은 인간의 도덕적 성취에 따라 부여되거나 철회되는 것이 아닙니다.
In short
- 창세기 1:26-28은 창조 기사에서 유일하게 숙의·형상·위임·축복의 형식을 취하며, 형상 선언과 통치 위임이 문법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 실체적 해석은 형상을 인간이 가진 속성(이성·도덕성)으로, 기능적 해석은 위임된 왕적 대리 통치의 직무로, 관계적 해석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열린 관계적 존재됨으로 이해한다.
- 세 해석은 각각 강점과 약점을 가지며, 배타적 선택지가 아니라 한 실재의 세 측면으로 보는 것이 본문에 충실하다.
- 그러나 강조의 순서는 중요하다. 관계와 부르심이 먼저이고, 직무가 뒤따르며, 능력은 직무의 수단이다.
- 창세기 9:6은 타락 이후에도 형상이 유지되며 살인 금지의 근거가 됨을 보여 준다. 곧 형상은 인간의 성취에 따라 부여되거나 철회되지 않는다.
- 시편 8편은 인간의 존귀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주께서 그를 생각하심"**에 근거함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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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and discussion
- 창세기 1장에서 인간 창조만 형식이 달라지는 세 가지 특징은 무엇이며, 각각이 형상 이해에 어떤 단서를 주는가?
- 고대 근동에서 왕이 변방에 자신의 상을 세웠던 관행을 배경으로 할 때, 창세기 1:26의 선언은 당시 사회에서 얼마나 급진적이었는가?
- 실체적 해석이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이 낳은 목회적 부작용은 무엇인가?
- 창세기 9:6이 타락 이후에도 형상을 근거로 살인을 금한다는 사실은, 형상의 성격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 시편 8편의 순서 — 하나님이 생각하심 → 존귀의 관 → 다스림의 위임 — 를 뒤집으면 어떤 신학적 문제가 발생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