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8-1: 용서란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가
7주 동안 우리는 위기의 여러 얼굴을 보았습니다. 갈등, 외도, 폭력, 이혼, 재혼, 고부간의 갈등. 이제 마지막 주,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만나는 한 단어 앞에 섭니다. 용서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만큼 교회 안에서 오해받는 단어도 드뭅니다. "용서했으면 됐지, 왜 아직도 그러느냐"는 말은 상처받은 사람을 두 번 아프게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믿음이 부족한 것"이라는 말은 가짜 화해를 강요합니다. 이번 강의는 용서를 정의하기 전에, 먼저 용서가 아닌 것 세 가지를 걷어내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낯설지 않습니다. 1-3강에서 배운 장치 A — 안전·화해·재결합의 구분이 바로 이 강의의 토대입니다. 용서는 화해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재결합이라는 별도의 조건과는 다른 트랙 위에 있습니다.
What these 12 minutes give you
- 성경적 용서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일에 근거한 결단이자 과정으로 정의한다.
- 용서가 "잊는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 용서가 "신뢰의 자동 회복"이 아님을, 장치 A(화해와 재결합의 구분)와 연결하여 설명한다.
- 용서가 "해악을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님을, 정의(justice)와의 관계 속에서 설명한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13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18:21-22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말하였더라
창세기 50:20-21
3.1 용서란 무엇인가 —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본받는 것
골로새서 3:13은 용서의 근거와 방향을 동시에 줍니다.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용서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먼저 하신 일을 본받는 행위입니다.
성경적 용서를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용서란, 가해에 대한 정당한 분노와 보복의 권리를 하나님께 맡기고, 상대를 향한 마음의 빚 문서를 놓아 버리기로 하는 결단이다.
여기서 세 가지가 눈에 띕니다.
첫째, 용서는 "일어난 일이 괜찮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용서할 것이 있다는 것은 실제로 잘못된 일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잘못이 없다면 용서도 필요 없습니다.
둘째, 용서는 보복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지, 결과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되갚지 않겠다"는 것이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용서는 한순간의 결단이면서 동시에 반복되는 과정입니다. 요셉은 창세기 45장에서 이미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이 죽은 뒤, 형들이 다시 보복을 두려워했을 때(창 50:15-21) 요셉은 같은 용서를 다시 확인해 주어야 했습니다. 용서가 한 번 선언했다고 다시는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 마술적 사건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3.2 용서가 아닌 것 ① — 잊는 것이 아니다
"용서하고 잊어라"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우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렘 31:34)고 말씀하시지만, 이것은 기억상실이 아니라 더 이상 그 죄를 근거로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겠다는 관계적 약속입니다.
사람의 기억은 그렇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배신당한 기억, 맞았던 순간의 기억은 용서한 뒤에도 남습니다. 특정한 냄새, 날짜, 장소에서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용서가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억이 떠오를 때 그 기억을 무기로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용서가 지켜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가 "이제 용서했으니 다 잊어버려야지"라고 말할 때,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기억하는 사람에게 감을 하나 더 얹는 일이 됩니다.
3.3 용서가 아닌 것 ② — 신뢰의 자동 회복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장치 A가 다시 필요합니다.
1-3강에서 배운 대로, 안전·화해·재결합은 서로 다른 세 갈래입니다. 용서는 화해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일입니다. 그러나 신뢰는 마음만으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신뢰는 상대방의 반복되고 검증된 행동 변화를 통해서만 서서히 다시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문장이 이번 주 전체의 중심 문장 중 하나입니다.
"나는 그를 용서했다. 그러나 아직 예전처럼 그를 믿지는 못한다." 이 문장은 모순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직하고 성숙한 문장입니다.
배신당한 배우자가 상대를 용서했지만 여전히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뢰는 용서와 별개의 시간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4강에서 다룬 "다시 신뢰를 쌓는 과정"이 바로 이 시간표입니다.
3.4 용서가 아닌 것 ③ — 해악을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다
세 번째 오해가 가장 위험합니다. 특히 4주(가정폭력)에서 반복해서 경고했던 **가짜 화해(cheap reconciliation)**와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발생합니다.
용서는 "그 일은 괜찮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용서가 성립하려면 먼저 그 일이 잘못이었다는 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부르지 않은 채 "그냥 넘어가자"고 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 회피입니다.
- 용서는 감정의 문제이고, 정의(justice)는 행동과 결과의 문제입니다. 이 둘은 함께 갈 수 있고, 때로는 함께 가야 합니다.
- 배우자를 용서했다고 해서 상담이나 법적 절차, 안전 조치가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 자녀를 학대한 사람을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과, 그 사람에게 다시 자녀를 맡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결정입니다.
다시 한번,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용서는 가해자에게 계속 상처를 입을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피해자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지, 가해자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3.5 용서는 사건이자 과정이다
요셉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창세기 45장에서 요셉은 형들 앞에서 웁니다. "나는 요셉이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창 45:4-5). 이것은 첫 번째 용서의 선언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50장, 야곱이 죽은 뒤 형들은 다시 두려워합니다.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창 50:15). 요셉은 다시 웁니다. 그리고 다시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 50:19-21).
용서는 한 번의 선언이면서 동시에, 필요할 때마다 다시 확인해 주어야 하는 관계적 실천입니다. 8-2강에서 배울 회복의 4단계 중 "치유" 단계에서, 이 반복되는 용서의 작업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3.6 오늘의 결론 — 무엇을 붙들 것인가
용서는 잊는 것도, 신뢰를 자동으로 되돌리는 것도, 잘못을 눈감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을 본받아, 보복의 권리를 내려놓기로 하는 결단입니다. 그리고 이 결단은 재결합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화해는 재결합 없이도 완전할 수 있습니다.
4-1. 용서와 신뢰 회복은 다른 트랙이다
3.3절의 도표를 참조하십시오.
4-2. 용서인 것과 아닌 것
| 구분 | 용서인 것 | 용서가 아닌 것 |
|---|---|---|
| 기억 | 기억은 남되, 무기로 쓰지 않음 | 기억을 지우는 것(잊음) |
| 신뢰 | 별도의 과정을 통해 서서히 재건 | 자동으로 회복되는 것 |
| 잘못 | "잘못이 있었다"는 인정에서 출발 | 잘못을 눈감아 주는 것 |
| 결과 | 보복의 권리를 하나님께 맡김 | 책임과 결과를 없애는 것 |
| 성격 | 결단이자 반복되는 과정 | 한 번의 감정으로 끝나는 사건 |
| 재결합과의 관계 | 재결합 없이도 완전할 수 있음(장치 A) | 반드시 재결합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 |
7. 복습 카드
| 앞면 | 뒷면 |
|---|---|
| 용서 | 보복의 권리를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의 빚 문서를 놓아 버리기로 하는 결단(골 3:13). 재결합을 요구하지 않는다. |
| 용서 ≠ 잊음 | 기억은 남을 수 있다. 기억을 무기로 쓰지 않는 것이 용서다. |
| 용서 ≠ 신뢰 자동 회복 | 신뢰는 상대의 반복된 행동 변화를 통해 별도로, 서서히 재건된다(장치 A). |
| 용서 ≠ 눈감아 줌 | 잘못을 잘못이라 부르는 데서 시작하며, 안전·정의와 함께 간다. |
★ 꼭 기억할 한 문장 용서는 재결합 없이도 완전할 수 있다. 마음은 놓아줄 수 있어도, 다시 함께 사는 것은 안전과 신뢰라는 별도의 조건을 요구한다.
✓ 이번 주에 할 행동 아직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나 사건 하나를 떠올려, 오늘 하나님 앞에 그 이름을 조용히 아뢰어 보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In short
- 용서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을 본받아, 가해에 대한 보복의 권리를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의 빚 문서를 놓아 버리기로 하는 결단이다(골 3:13).
- 용서는 잊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남을 수 있으며,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용서의 실패가 아니다. 그 기억을 무기로 다시 쓰지 않는 것이 용서다.
- 용서는 신뢰의 자동 회복이 아니다. 장치 A(안전·화해·재결합)에 따라, 화해(용서)와 재결합(신뢰 회복)은 다른 트랙이며 다른 시간표를 가진다.
- 용서는 해악을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잘못이라 부르는 데서 출발하며, 안전 조치·상담·법적 절차와 함께 갈 수 있다.
- 용서는 사건이자 과정이다. 요셉은 창세기 45장에서 용서를 선언했고, 50장에서 다시 확인해 주었다.
- 이번 주 전체의 중심 문장: "나는 그를 용서했다. 그러나 아직 예전처럼 그를 믿지는 못한다"는 모순이 아니라 성숙한 정직함이다.
더 들어가려면 — LM205(기초상담: 듣는 법)의 배신·상처 다루기 단원, ST5 구원론의 화해(reconciliation)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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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and discussion
- "용서했으면 다 잊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 말은 실제로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 용서와 신뢰 회복이 다른 트랙이라는 설명이 당신에게 위로가 됩니까, 아니면 낯설게 느껴집니까?
- "그 일은 잘못이었다"고 분명히 말하는 것이 왜 용서의 전제 조건이 됩니까?
- 요셉이 창세기 45장과 50장에서 두 번 용서를 확인해 준 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 당신의 삶에서 아직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지금 하나님께 어떻게 아뢰겠습니까?